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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12] 이경문 BoB 멘토…'어서와 이런 열정맨은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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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12] 이경문 BoB 멘토…'어서와 이런 열정맨은 처음이지?'
  • 길민권 기자
  • 승인 2017.09.1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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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땀 흘리며 올라가 보지도 않고 산을 안다고 하면 안돼…”

▲ 이경문 BoB 멘토. 고려대 및 중부대 교수
▲ 이경문 BoB 멘토. 고려대 및 중부대 교수
오랜만에 ‘취중진담’을 재기한다. 이번 주인공은 BoB(Best of the Best. 차세대 보안리더 양성교육) 멘토이자 대학교수로 맹 활약하고 있는 이경문 멘토다. 강남역 BoB 센터 근처에서 만나 같이 담배 한대를 피우고 식당을 물색했다. 원래 생각해 두었던 삼겹살집은 결국 찾지 못하고 근처 사골 수육 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1차는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와 함께 딸 바보 아빠로 살아가는 최근 근황에 대해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다. 걷는게 싫어 2차는 그 건물 바로 위 사케 집에서 딱히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안주를 시켜 놓고 대화를 이어갔다. 우선 대학교수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술이 들어가면서 목소리 톤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기자: 중부대와 고려대에서 정보보호학과 강의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학생들이 잘 따라오나요.

이경문: 중부대에서는 정보보호학과에서 그리고 고려대에서는 사이버국방학과 과목을 강의하고 있어요. 1년 됐네요. 대학 강의는 BoB 강의와는 많이 달라요. 대학은 취업률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학생들도 취업을 위해 학점을 중시하고 스팩을 쌓는데 신경을 쓰고 있죠. 학점 위주, 자격증 위주의 공부는 사실 현업에 나가면 도움이 안되는데도 어쩔 수 없이 대학 구조상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교수에게 취업률 압박은 생각보다 커요. 정부에서 대학을 평가할 때 취업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학점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학생들도 열정을 갖고 한 분야에 파고들기 보다는 취업에 맞는 공부를 하려고 해요. 이런 수업은 저와는 맞지 않아서 좀 힘들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도전하고 땀 흘리고 진짜 스스로 제대로 된 공부를 한번 해 보라고 계속 챌린지하고 있어요. 인터넷에 떠 있는 내용들을 취합해서 과제를 제출하면 자신에게 남는 건 없어요. 학점은 잘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학생들은 사실 현업에서도 결국 인정받지 못할꺼에요. 어려운 과제지만 스스로 밤샘을 해가며 도전하고 공부하고 결과물이 좋지 않아도 결국 그게 남는 거라고 생각해요. 코딩 결과물이 지저분해도 스스로 끙끙대며 해보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정이 가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죠. 그런 학생들이 사회에서는 더 발전할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 강의와 BoB 강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흥분했고 열정적이지 못한 대학 학업 분위기에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구글링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과제를 내면서 학생들에게 스스로 도전하고 실패도 해보라고 말한다. 그게 진짜 남는 공부라고 말하며 사케를 들이킨다. 대학 현실이 이해도 되지만 열정이 사라진 대학에 힘들었던 모양이다.)

기자: 과거로 좀 돌아가 볼까요. 대학시절과 이후 몇 군데 회사를 다니셨는데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경문: 중고등학교 때부터 국어나 다른 암기과목에 비해 수학과 과학은 잘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때는 전국 물리경시대회에 나간적도 있고. 안동에서 서울대학교까지 와서 대회에 참가했어요. 컴퓨터는 중학교때부터 흥미를 가졌어요. 추운 겨울 방학동안 난로도 없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혼자 컴퓨터 공부를 하기도 하고, 컴퓨터 오락실에서 게임이 끝나고 프로그램을 누가 만들었는지 올라 오는 글을 보고 그때 처음 프로그래머가 되어야 겠다고 목표를 세웠어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중학교때부터 대학 진학을 전산과로 정했고 결국 인하대 전자계산공학과에 입학하게 됐죠.

그래서 대학생활은 정말 재미있게 후회없이 했어요. 3학년 때는 프로그램 개발 알바도 하고 4학년때는 학내 벤처기업을 차려 프로그램 개발 회사도 운영해 봤어요. 그때 월급을 줘야 할 직원이 20여 명 가까이 됐죠. 처음엔 괜찬았는데 자금이 잘 돌지 않고 월급날이 무서워지고 너무 힘들어서 한번은 혼자 차를 타고 영덕까지 가서 밤바다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눈물을 훔친적도 있었어요. 다시는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요.

기자: 월급을 받는 것과 월급을 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인생이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요. 그렇게 눈물의 첫 사업을 접고 첫 직장은 어디였어요.

▲ 이경문 교수
▲ 이경문 교수
이경문: 첫 직장은 새롬기술이었어요. 당시 무선 음성통신 기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때 삼성 소프트웨어맴버쉽 과정에 선발돼 서울에 1년 정도 기숙사 생활을 했죠. 그런데 기숙사 전화를 못쓰게 하는거에요. 그래서 보이스모뎀을 구해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무선통신에 관심을 가졌고 새롬기술에 입사할 때도 그때 경험이 도움이 됐어요. 그렇게 3년을 보내고 프리랜서 생활을 했죠.

당시 화상, 음성 컴포넌트 프로그램 ‘브이드림’을 만들어서 수입이 좀 됐어요. 프리랜서 생활을 5년 정도 했죠. 스눕스파이도 그때 만들었어요. 네트워크 패킷 하이재킹 프로그램이죠. 이때 보안과 해킹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스눕스파이를 만들 때 당시 유명 포털사이트와 많은 사이트의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평문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해킹 위험성을 알렸지만 업체들은 반응이 없더군요. 기업에서 보안이 중요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죠. 

아무튼 잘 팔리던 브이드림 프로그램이 불법 복제가 늘고 수입이 줄어들어 다시 아라기술에 입사를 하게 됐어요. 졸업할 때는 학점, 영어, 스팩이 필요하지만 막상 사회는 인맥이더라구요. 새롬기술에서 만났던 선배가 아라기술로 이직하면서 저를 불렀어요. 아라기술에서는 네트워크 패킷을 본격 연구했던 시기였어요.

아라기술에서는 토렌트 트래픽을 차단하는 업무를 맡았어요. 당시 통신사는 토렌트 트래픽으로 애를 먹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토렌트 트래픽 연구모드에 돌입해 이를 탐지하고 차단하는 기술을 알아냈어요. 기가급 트래픽까지 다뤄보며 네트워크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이후 아라기술에서 시큐아이와 시디네트웍스를 거쳐 재작년부터 BoB 멘토와 대학 교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시큐아이와 시디네트웍스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지만 이쯤에서 마무리 하는걸로. 아무튼 이경문 멘토는 네트워크 분야에서 실무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축적시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학생들에게 한 땀 한 땀 스스로 공부하고 깨닫기를 강조했던 것이 아닐까.)

기자: 이제 BoB 멘토 이야기로 가볼까요. BoB 멘토로 합류하게 된 계기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경문: BoB 멘토는 2년 전 4기부터 합류했어요. 몇 년 전, 초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해킹캠프에서 네트워크 해킹 강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정구홍 멘토(그레이해쉬)를 처음 만났고 그 인연으로 저를 BoB 네트워크 부분에 멘토로 추천해줘서 시작하게 됐어요. 사람 인연이 그렇게 연결이 되더군요. BoB의 좋은 시스템 그리고 열정 가득한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에 초대해 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학생들에게 항상 뭐든지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고, 할까말까 망설이지 말고, 열심히 해보라고 말해요. 과제를 할때도 학점이나 취업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힘들게 뭔가를 해냈을 때 그 기쁨을 느껴보라고 말하고 있어요. 결국 그 힘들었던 과정이 학생들에게 훗날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거에요. 어떤 학생들은 해킹대회나 보안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면 학점을 못받을까봐 대외활동도 안하고 오직 학점을 위한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힘들게 산에 오르지 않고 등산하는 것을 이론으로 배워 학점을 잘 딴다고 해서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는 없어요. 작은 산부터 시작해서 높은 산까지 직접 두 발로 땀 흘리며 올라가 보고 실수나 실패도 해봐야 진짜 등산이 무엇인지 알게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진짜 자신의 실력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BoB 멘토들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지 전문 강사들처럼 입에 떠 넣어 주지 않아요. 그래야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BoB를 다녔다고해서 모두 최고의 해커나 보안전문가가 될 수는 없어요. BoB에서 좀 지내다 보면 자신의 실력을 알게 되요. 타고난 실력파들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내가 잘 한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공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멘토들도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난 거지 모든 분야를 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취약점이든 컨설팅이든 포렌식이든 어떤 한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편하게 공부하지 말고 편법이나 지름길을 먼저 배우지 말길 바래요.

또 BoB 수료생들이 다시 학교나 사회로 나가서 BoB에서 체득한 열정과 학구열을 가지고 학교나 회사 분위기를 바꿔 나가길 바래요. 순위와는 상관없이 CTF 해킹대회도 나가보고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작은 세미나라도 발표도 해보고 몇날 며칠 밤을 새며 코딩도 해 보고 그런 열정 바이러스를 BoB 출신들이 확산시켜 나갔으면 해요. 그것이 BoB의 진정한 존재이유라고 생각해요. 취업이나 스팩쌓기를 위해 BoB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현재 140명이 BoB 모집인원인데 더욱 늘려 보다 많은 학생들이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는 혜택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BoB 이야기가 나오니 밤을 샐 기세다. 술도 한 병 더 시키라고 한다. 다행히 이쯤에서 이경문 멘토의 와이프한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살짝 꼬이려고 하는 혀를 컨트롤하며 그가 공손하게 전화를 받는다. 그래도 티가 좀 났다. 술을 더 시키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 정도면 전철을 타고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기자: 이제 마지막 이야기 듣고 지민이(이경문 멘토의 다섯살 딸) 보러 가시죠.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그리고 지민이가 해커가 되겠다고 하면 어쩌실 건가요.

이경문: 교육 쪽에 계속 일을 하겠지만 교육이 저의 주 업무는 아니에요. 결혼 한 몸이라 돈도 열심히 벌어야겠지만 제 목표는 ‘GILGIL’(이경문 멘토의 닉네임)이란 이름으로 알고리즘을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에 남고 사용되는 알고리즘을 만드는게 개발자로서의 꿈이죠. 그리고 당연히 딸이 원한다면 적극 밀어줘야죠. 하지만 조기교육은 안 시킬 꺼에요. 관심과 재미를 느끼고 자신이 하고자 한다면 적극 추천이죠. 그런데 지민이는 문과 체질 같아요. (딸 이야기가 나오니 입이 귀에 걸린다.)

기자: 아 참 마지막으로 이번에 출전한 삼성전자 해킹방어대회(SCTF) 이야기 좀 해주시고 가시죠.

이경문: 예선전 문제를 보니 재미있게 생겨서 문제를 풀어봤어요. 예선전 문제를 푸는데 딸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중간에 병원도 갔다오고 좀 정신없이 풀었는데 운좋게 배점이 높은 문제를 풀게 됐어요. 턱걸이로 본선에 갔는데 최고령이라 그런지 계속 카메라가 저를 찍는거에요. 순위보다는 그냥 다른 참가자들의 열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참가했어요. 와이프가 염색도 시켜주더군요. 나이 많은 거 티나면 안된다고. 대회를 마치고 문제 출제위원이 다가와서 대단하시다며 악수를 청하더군요. 문제 출제위원이 저보다 어렸어요. 그래도 이런 경험을 통해 항상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가 북적대는 강남역 밤거리에서 지하철역 아래로 사라져 갔다. 오랜 시간 그와 알고 지낸 기자 입장에서 그는 항상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에서도 BoB에서도 그는 한결 같은 열정으로 제자들과 후배들을 대한다. 그 열정이 학생들에게는 가끔 부담스럽고 힘들게 다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있을 때 즐겨라. 그런 열정을 가진 선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진심으로 ‘청출어람’을 원하고 있었다. 후배들의 열정과 두려움없는 도전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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